무국적, 무호적 독립운동가가 국적회복을위한 국적법개정
정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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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후 한국 호적에 등재하지 않은 독립운동가는 대한민국의 국민인가, 아닌가.
대표적 독립운동가인 단재 신채호(丹齋 申采浩·1880∼1936) 선생의 유족들은 광복 전 숨진 단재 선생이 국적도, 호적도 없는 탓에 법원을 쉴 새 없이 들락거려야 했다. 단재의 장남이 아버지의 이름을 호적에 올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65년.
단재 선생처럼 무국적, 무호적 독립운동가가 적지 않다. 광복 60주년을 맞아 이들의 국적을 회복해 주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왜 이런 일 생겼나=일제는 1912년 조선 통치를 위해 새 민법인 ‘조선민사령’을 마련해 공포했다. 이에 따라 그동안의 족보는 모두 무시됐고 조선인은 호주와 가족사항을 새로 신고해야 했다.
이때 단재를 비롯한 상당수 독립운동가들은 일제가 만든 호적에 이름을 올릴 수 없다며 신고를 거부했다. 호주가 호적을 만들지 않았으니 그 자손 역시 제대로 된 호적을 가질 수 없었다.
특히 광복 후 대한민국은 국적부를 따로 두지 않고 호적에 등재된 사람에게 모두 대한민국의 국적을 부여했다. 자연히 호적을 만들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은 국적조차 얻지 못하는 경우가 생겼다.
정확한 통계자료는 없지만 무국적 무호적 독립운동가는 석주 이상룡(石洲 李相龍·1858∼1932), 여천 홍범도(汝千 洪範圖·1889∼1943), 부재 이상설(溥齋 李相卨·1870∼1917), 노은 김규식(蘆隱 金圭植·1880∼1931) 선생 등 200∼3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후손이 아예 없어 단재 선생의 자손처럼 호적을 회복하려는 시도조차 없다.
대표적인 예가 봉오동 전투로 유명한 홍범도 장군. 그의 아내와 아들은 1908년 일본군에 의해 몰살됐다. 홍범도기념사업회는 홍 장군의 국적이 현재까지 러시아로 돼 있다는 사실이 현지 조사결과 확인됐다고 12일 본보에 알려왔다.
▽국적 회복운동=이들에 대한 국적 회복은 독립운동가의 명예회복 차원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학계의 의견이다.
한국외국어대 법학과 이장희(李長熙) 교수는 “광복 60주년을 맞아 국가보훈처에서 훈장을 주는 것과 별도로 법제도적 측면에서 이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국적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회 일각에서도 9월 정기국회 때 국적법 개정안을 제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개정안에는 ‘우리 민족으로서 일본제국주의 통치시대에 무국적 상태로 있다가 대한민국정부수립 전에 사망한 자는 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진 자로 본다’는 조항이 신설된다.
이에 대해 법무부와 보훈처는 상당수 독립운동가가 한국 국적이 없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1910년 한일강제합방조약이 국제법상 무효이므로 이때 만든 조선민사령을 근거로 국적과 호적이 없다는 주장은 무리라는 것. 법무부는 설령 무국적자라 하더라도 사망한 사람에 대해 국적을 부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도 밝혔다.
건국대 법학과 한상희(韓相熙) 교수는 “당시 국적법에 대한제국 혹은 1910년 당시 대한제국의 신민이었던 자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본다는 조항만 만들었어도 이런 혼란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국적법의 개정도 의미가 있지만 해외에 거주하는 독립운동가의 자손이 귀화를 쉽게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실질적으로 독립운동가의 후손에게 도움이 되도록 법을 보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