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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한국사 I 166 의열단과 상해임시정부, 다른 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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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단의 활약은 대외적으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21년 조선총독부에 폭탄을 투척했던 김익상은 이듬해인 1922년 3월, 오성륜 등과 함께 상하이의 황포탄으로 향한다. 이들의 임무는 배편으로 황포탄에 들어올 예정인 일본육군대장 다나카 암살이었다. 다나카가 배에서 내리는 순간 세 발의 총성이 부두에 울려 퍼졌다. 그러나 총알은 다나카를 비껴갔다. 도주하던 김익상과 오성륜은 곧 체포됐지만 이 사건은 의열단의 이름과 식민지 한국의 상황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된다. 의열단의 활동이 왕성했던 1920년대, 중국에서의 독립운동을 대표하는 조직은 상해임시정부였다. 3.1운동 직후 더욱 극심해진 일제의 탄압으로 임시정부는 온건노선을 걷고 있었다. 일제의 주목을 받게 된 의열단의 암살파괴 활동과 임시정부는 무관하다는 성명을 낼 정도로, 의열단과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노선은 큰 차이를 보였다. 거사에 참여한 의열단원 중 상당수는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내부적인 고민은 의열단과 김원봉의 투쟁노선에 변화를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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