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한국사 I 160 의열단의 목숨을 건 항일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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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9월 14일, 부산경찰서 폭탄투척의거로 경찰서장 하시모토가 사망했다. 1921년 9월 12일, 조선총독부 폭파의거가 발생했다. 부산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26살의 청년 박재혁과 조선총독부에 폭탄을 던진 27살의 청년 김익상은 의열단원이었다. 1919년 11월 만주에서 약산 김원봉을 주축으로 조직된 항일무력독립운동단체, 의열단은 정의로운 일을 맹렬히 행한다는 원칙 아래 뭉쳐, 일제 관공서를 파괴하고 일본 요인을 암살했다. 1921년 일제식민통치의 심장부를 쑥대밭으로 만든 김익상은 아수라장을 유유히 빠져나와 북경으로 피신했다. 그는 6개월 뒤인 1922년 3월 28일, 상해 황포탄에 도착한 일제 군부의 거물이자 침략주의자였던 다나카 기이치 처단을 시도했다. 의거는 성공하지 못했고 그는 피신 중에 체포된다. 의열단원 박재혁은 일제의 사형선고 후, 왜놈 손에 죽느니 스스로 죽겠다며 단식했고 1921년 5월 11일 순국한다. 밀양경찰서 투탄의거 의열단원 최수봉은 1921년 7월 8일, 일제의 사형집행으로 순국한다. 종로경찰서 폭파의거 의열단원 김상옥은 일제와의 총격전 끝에 자결한다. 도쿄왕궁 투탄의거 의열단원 김지섭은 1928년 2월 20일 일본에서 옥중 순국한다. 동양척식주식회사-조선식산은행에 투탄 의거한 의열단원 나석주는 일본경찰과의 총격전 끝에 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