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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한국사 I 157 ‘까레이스키’들의 고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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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한반도 북녘에 기근이 돌면서 살기 어려워진 농민들 13가구가 연해주 포시에트 지역으로 최초 이주한다. 이후 일제 치하 식민생활을 피하고, 항일독립운동을 위해 연해주로의 이민이 급증한다. 연해주에 정착한 조선 사람들은 벼농사를 시작하고 정착의 삶을 일궈간다. 이때 이들 스스로가 ‘우리는 고려사람’이란 뜻의 꼬레사람이라고 칭한 것에서 까레이스키란 이름이 생겨난다. 이렇게 20여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연해주의 고려인 사회를 정착시켜 갔다. 1937년 스탈린은 한인들을 연해주에서 몰아내라는 명령을 내린다. 당시 연해주 정복을 노린 일본이 생김새가 비슷한 고려인들을 첩자로 이용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고려인들은 70여 년간을 꾸준히 일궈온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17만 2000여 명에 달하는 고려인 전원은 고향 연해주에서 강제로 쫓겨나, 우슈토베를 포함한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 떨궈져 모진 시간들을 살아내야 했다. 그들은 늪지대를 말리고 농기구 하나 없이 맨손으로 땅을 일구고, 그 허허벌판에 벼를 심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뺏긴 채 급히 쫓겨 오는 와중에도 볍씨만은 몰래 숨겨온 것이다. 이렇게 고려인들은 우즈베키스탄을 주요 쌀농사 지역으로 변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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