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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기획 창] ‘순국선열의 날’ 특집 : 돌아오지 못한 독립투사들 / KBS뉴스(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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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오지 못한 독립투사들 (11월 13일 화요일 밤 10시 1TV 방송) ■ 연출 : 이충형 ■ 이역만리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영혼들'... 내년 임시정부수립 백주년을 앞둔‘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해외에서 아직까지 유해가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독립투사들의 삶을 조명한다. 그들은 누구인가? 그 발자취와 흔적을 발굴,추적함으로써 적극적인 유해 봉환 노력이 필요함을 밝힌다. 1946년 윤봉길 의사 유골은 돌아왔지만 중국,러시아,조선 전역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많은 독립투사들의 묘소가 확인 안 되거나 훼손돼 고국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김가진,김산,한위건,조명희,김알렉산드라 등 조선독립을 위해 일제와 싸우다 희생된 투사들의 삶을 추적하고 조상의 유해를 찾지 못하고 있는 후손들의 안타까운 사연들을 만난다. 일제 강점기 처형된 희생자는 15만 명 이상이지만 국가 유공자로 서훈 받은 사람은 1,500명에 불과해 희생자의 90%를 찾지 못하고 있으므로 적극적인 발굴과 유해 봉환 노력이 절실한 실정이다. ■ 독립투사들을 찾아가는 기나긴 여정 1. 상하이 중국인들에게도 추앙받는 윤봉길 “아들아,너희는 조선의 투사가 되어라” 고국에 남겨둔 어린 아들에게 짧은 유언을 남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윤봉길 의사. 의거 현장인 상하이 루쉰 공원에는 요즘도 윤 의사를 존경하고 숭배하는 중국인들이 많이 찾고 있다. 중국인들은 이곳에 기념관도 세우고 요즘도 윤봉길을 존경하는 글을 공원 곳곳에 쓰고 있다.윤봉길 의사의 유해는 해방 이후 어렵사리 고국에 돌아왔지만 우리에겐 유해를 찾지 못한 독립 투사들이 훨씬 많다. 2. 상하이 만국공묘에서 사라진 묘지들.. 일제 강점기,최대 비밀조직이었던 대동단을 결성했고, 3.1운동 직후 상하이로 망명했던 김가진은 과거 상하이 만국공묘에 비석과 봉분이 있었지만 비석이 사라졌고 유해 위치도 정확히 확인하기 어렵게 됐다. 1993년 임정 요인들의 유해가 고국의 품에 안겼지만 김가진은 당시 묘소 위치가 확인됐음에도 어떤 연유에선지 돌아오지 못했다.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묘소도 위치 파악은 물론이고 표지석도 찾기 어렵게 됐다. 3. 감옥에서 부른‘눈물의 아리랑’...비운의 조선인 혁명가 김산 중국 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조국 독립을 위해 싸운 조선인 혁명가 김산은 14살 때 중국에 망명한뒤 만주 신흥무관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았고 옌안에서 활동하던 중 미국인 여기자 님 웨일즈를 만나‘아리랑’책을 남겼다.감옥에 갇힌 뒤 모진 고문을 받았고 스파이 누명을 쓴채 극비리에 처형됐다.우리 정부가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지만 그의 시신이 어디에 묻혔는지 묘소는 찾지 못하고 있다. 4. 쓰러진 묘비,사라진 유해들.. 신간회에 참여했고3.1운동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한위건은 중국으로 망명한 뒤 임시정부 내무위원을 지냈다.옌안에서 오랜 지하 투쟁 끝에 얻은 폐결핵이 도지면서 생을 마감했고 청량산 공동묘지에 묻혔다.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곳의 조선인 묘지구역에는 비석들이 바닥에 쓰러져 뒹굴고 있고 한위건의 묘소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5. 연해주의 남은 영혼들...조명희와 김알렉산드라 일제의 탄압을 피한 애국지사들의 망명이 이어지면서 항일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됐던 연해주에도 묘소를 찾지 못한 독립투사들이 많다.우리나라 최초 희곡을 쓴 근대문학 선구자로,연해주 항일투쟁영웅59인에 꼽힌 작가 조명희는 블라디보스톡에 있는 기념비 동판이 뜯겨 나갔고 그가 가르쳤던 청년농민학교는 폐허로 변했다. KGB에 끌려가 억울한 총살형을 당한 조명희의 묘소는 하바로프스크 시립 공동묘지에 있었으나 취재 결과 표지석이 사라지고 무덤 위치도 확인이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베리아 한인2세로 태어나 극동지역 한인혁명가로 활동했던 조선 여인,김알렉산드라는 이른바‘죽음의 계곡’에서 총살당했지만 그의 묘소는 찾을 길 없이 아무르강에 떠도는 영혼으로 남아 있다. 6. 처형된 희생자는15만 명 이상,국가유공자는1,500명 뿐 일제강점기,독립운동과정에서 희생된 사람은 최소 15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지만 지금까지 국가유공자로 서훈을 받은 사람은 적은 숫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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